비고스
김경룡 비고스 대표, 50만 교사의 지갑 연 역발상 에듀테크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은 2025년 약 1813억 달러에서 2037년 6468억 달러로, 연평균 14.2%의 성장이 전망되는 거대한 판이다. 한국 역시 교육 현장의 AX(AI Transformation)를 핵심 화두로 삼으며, 공교육 전반의 디지털 전환을 국가 의제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처럼 시장의 문이 열리고 있지만, 대부분의 에듀테크 기업들은 여전히 학교와 교육청을 향해 영업하고, 교사는 서비스의 수혜자로만 존재한다. 비고스는 그 관행을
조용히, 그러나 정면으로 뒤집었다. 교사를 고객으로 정의하고 그들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서비스를 만든 것. 이 역발상이 AI 기반 교사 업무 혁신 플랫폼 ‘하마룸’과 과정 중심 LMS ‘하마오’를 낳았다. 에듀테크의 문법을 다시 쓰고 있는 비고스 김경룡 대표를 만나 그 비전을 들었다.
에듀테크 시장에서 ‘고객’은 누구인가. 오랫동안 이 질문의 답은 자명했다. 학교, 교육청, 정부 예산을 쥔 기관이 곧 고객이었다. B2G·B2B 중심의 영업 문법이 산업 전반을 지배했고, 그 구조에서 교사는 서비스의 수혜자로만 존재했다. 납품 단가 경쟁이 품질을 압박했고, 서비스는 행정 논리에 맞춰 설계되었다. 현장의 필요는 언제나 두 번째였다.
바로 이 지점에 김경룡 대표는 기회를 발견했다. 전국 50만 교사를 직접 고객으로 삼는 B2C 구독 모델은, 기관 의존도가 높은 기존 에듀테크 기업들이 비워둔 시장을 정확히 파고든다. 교사 한 명이 결제를 시작하면 학교가 반응하고, 학교가 반응하면 교육청이 따라오는 상향식 확산 구조는 전통적인 B2G 영업보다 훨씬 강한 시장 침투력과 록인(Lock-in) 효과를 만들어낸다. 교사 팬덤을 기반으로 한 이 구조가 비고스의 핵심 경쟁 자산이다. 김 대표는 이 구조적 공백에서 사업 기회를 읽은 것이다. 교사 출신으로 IT 기업에서 10년간 서비스 기획자로 일한 그는 두 세계의 간극을 가까이서 목격했다. 창업의 출발점이 된 것은 두 가지 질문이었다.
“학생 수는 줄어든다는데, 왜 교사는 더 힘들어지는 걸까. AI 기술은 발달하는데, 왜 교사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걸까.”
공교육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을 민간의 속도로 풀겠다는 확신이 창업으로 이어졌다. 카카오톡처럼 누구나 편리하게 쓰는 서비스를 교육 현장에 들여오겠다는 것이 그의 첫 번째 선언이었다.
하마룸, ‘생활기록부 스트레스’를 사업 기회로
첫 아이템은 기간제 교사 채용 매칭 플랫폼 ‘티처라인’이었다. 시장의 필요는 분명했다. 그러나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지 않았고,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시장의 반응은 녹록지 않았다. 김 대표는 이 경험에서 창업가로서의 핵심 질문을 얻었다. ‘누가 돈을 지불할 것인가’. 필요와 결제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진짜 과제였다.
전환점은 교사들의 현장에서 나왔다. 학교 안에는 다양한 불편함이 산재해 있지만, 김 대표가 주목한 것은 생활기록부 작성이었다. 매 학기 수십 명의 학생 개개인에 대해 차별화된 문장을 써야 하는 이 업무는 교사에게 사실상 큰 업무 부담으로 작용했다. 정교한 표현, 긍정적이면서도 차등적인 어휘 선택, 아이의 성장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해야 하는 고강도 지적 노동이 요구되는 일이었던 것. 문장형으로 기술되는 항목들은 단어 하나의 선택이 학생의 자존감과 진로에 실질적 영향을 미친다. 교사들이 이 작업에서 느끼는 부담은 상당했고, 그 무게는 오래도록 외면받아온 현장의 통증이었다.
비고스는 생성형 AI 기술로 이 문제를 정면 공략했다. 핵심은 기술의 과시가 아니라 사용자 경험의 정교함이었다. 교사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반영할 수 있도록, 텍스트를 직접 입력하는 프롬프트 방식 대신 클릭과 키워드 중심의 정보 관리 방식을 설계했다.
“GPT나 제미나이처럼 프롬프트를 입력하는 방식은 교사의 업무 흐름에 맞지 않습니다. 버튼을 눌렀을 때 기대하는 화면 그대로 나와야 교사가 결제합니다.”
결과는 명확했다. 서비스를 경험한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기 시작했고, 초기 지표는 투자 유치로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주 타깃으로 설계했지만 중학교, 초등학교 교사들의 결제도 잇따랐다. 국영수사과를 넘어 음악·미술·체육, 제2외국어까지 과목별 특성을 세분화하며 서비스는 빠르게 확장됐다.
고객을 재정의하다
비고스의 성장 방정식을 단 하나의 문장으로 말한다면 ‘고객의 재정의’다. 기존 에듀테크 시장은 학교와 교육청을 고객으로 상정했다. 교사는 서비스의 수혜자였지만 결제 주체는 아니었다. 이 구조에서는 서비스 품질보다 납품 단가와 행정 절차가 우선이었다.
비고스는 이 공식을 뒤집었다. 교사 개인이 기꺼이 지갑을 여는 서비스를 만들면, 기관도 따라올 것이라는 논리다. 타이밍도 맞아떨어졌다. 넷플릭스, 쿠팡 와우, ChatGPT 유료 플랜 등 개인 구독 문화가 일상이 되면서, 교사들도 업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서비스에는 월 3만원 이상을 지불할 의향이 생겼다. 비고스의 가격은 그보다 낮았다. 개인 구독 소비가 보편화된 시대의 흐름이 비고스의 비즈니스 모델과 정확하게 맞물렸다.
마케팅 전략 역시 이 철학에서 출발했다. 온라인 광고 대신 오프라인 박람회와 현장 시연을 택했다. 광고로 접근하기보다 직접 만나 서비스의 편리함을 체감시키고, 프리미엄 이미지를 쌓는 방식으로 팬덤을 형성했다. 전국 50만 교사 중 최소 5만명에게 직접 닿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목표다. 이는 숫자보다 관계의 밀도를 먼저 쌓겠다는 김 대표의 혜안이기도 하다.
하마오, 교육의 본질을 건드리다
비고스의 시선은 이미 다음 단계를 향해 있다. 학습 과정 기록 플랫폼 ‘하마오’는 단순한 업무 보조 도구를 넘어, 과정 중심 교육을 실현하는 LMS를 지향한다. 교사가 과제를 부여하고 학생의 활동이 기록되면 AI가 성취 기준 달성 여부를 피드백한다. 학생은 모든 과목의 활동이 한 곳에 누적돼 자동으로 성장 포트폴리오가 완성된다.
“데이터가 쌓이면 단순히 교사의 업무를 줄이는 것을 넘어, 교육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현재 공교육 시스템에는 과정 중심 평가 데이터를 담을 인프라가 없다. 구글 클래스룸은 범용 도구일 뿐, 한국 교육 현장의 업무 구조와 성취 기준 체계를 반영한 통합 관리가 어렵다. 그리고 교사마다 제각각인 플랫폼은 학생에게도 혼란이다. 하마오는 이 공백을 파고들었다. 교사가 ‘가르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 그것이 하마오가 만들고자 하는 교실의 모습이다.
기술 개발의 방향도 일관된다.
“AI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평준화됩니다. 그 위에서 어떤 고객 맞춤화를 쌓았느냐가 결제를 만듭니다.”
거대 언어 모델(LLM)이 범용화되는 시대에 비고스는 교육 현장 고유의 데이터와 사용자 경험의 깊이로 경쟁한다. 기술이 아닌 현장 이해가 진짜 진입 장벽이다.
K-에듀테크, 글로벌을 겨냥하다
김 대표의 시선은 국내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국에서 검증된 모델을 들고 일본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다. 일본을 교두보로 북미와 아시아 전역으로의 확장을 그리고 있다.
“한국에서 1000억 매출보다, 한국 200억에 일본 300억 매출이 더 의미 있는 수익 구조입니다.”
전략적 근거도 분명하다. 한국의 높은 교육열과 촘촘한 교육 시스템은 해외에서 신뢰 자산이 된다. 기존 에듀테크 기업들이 B2G 구조 안에서 품질을 타협할 때, 비고스는 교사를 직접 고객으로 삼아 기준을 높게 유지해왔다. 한국에서 하마오로 축적한 교육 활동 데이터, 일본에서 쌓을 현지 교사와 학생의 데이터가 비고스만의 해자(垓字)가 될 것이다.
조직 운영 철학도 사업 철학과 닮아 있다. 스타트업은 목표가 수시로 바뀐다. 그럴수록 리더와 팀원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김 대표는 PPT나 문서 대신 펜과 판서로 즉시 설명하고 메모를 곧바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빠르고 정확하게, 군더더기 없이 소통한다.
“학교에서 성장하는 아이, 그 당연함을 현실로 만드는 솔루션이 될 것입니다.”
김 대표가 비고스의 지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더 지쳐가는 교사의 문제를 해소하는 것에서 출발한 이 스타트업은, 이제 교육의 본질 자체를 재설계하는 도전 앞에 서 있다. 수백조원 규모로 팽창하는 글로벌 에듀테크 시장에서 비고스가 새로 쓰려는 고객의 정의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